주왕산의 개요는 경북 청송군의 한 산은 해수면이 721m에 이릅니다. 이름의 기원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주왕산 일대는 백제의 위대한 호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호수 바닥에 퇴적물이 쌓였고, 약 7천만 년 전 이 퇴적물이 거대한 화산 폭발을 일으켜 뜨거운 재가 다량으로 쌓였습니다.
-목차-
1. 주왕산의 개요
2. 주왕산 이름의 기원
3. 주왕산의 먹거리
1. 주왕산의 개요
주왕산 주변에 폭포들이 많이 위치해 있는 이유는 주왕산 둑의 바위가 안산-크랲에 매우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침식이 복잡하고 협곡의 깊이가 깊어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러한 지질학적 특성으로 인해 주왕산의 바위, 폭포, 계곡, 산들이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변모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산은 국내 8대 지질공원으로 등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산을 포함한 청송군 지역이 2017년 초에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등록되었습니다.
- 유네스코 등록은 2010년 제주도 등록 이후 이번이 두 번째에 해당합니다.
2. 주왕산 이름의 기원
다음 전설은 왜 주왕산이 이름 지어졌는지 말해줍니다.
당나라 때 당나라의 수령 후주천을 칭했다는 이유로 당나라의 수도 돈을 함락시켰으나 안록산맥을 다스리던 각자 장군에게 패해 영암으로 도망쳤습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주왕입니다. 반란의 패배 후, 왕은 한반도의 석병산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는 산 입구인 굴촌굴치에 성을 쌓고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이후 신라에 주님이 숨어 계신 것을 알고 있던 당나라가 신라에 주군을 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신라는 석병산에 그의 형제들을 필두로 왕과 그의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제압 군을 보냈습니다.
신라의 군대와 싸워 패한 왕은 폭포수가 입구를 덮고 있는 왕의 동굴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시수를 위해 몰래 탈출한 왕은 당나라에 의해 생포되어 납치됩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 왕이 장군의 화살과 쇠를 맞았다고 합니다.
주왕산의 진달래는 신라 장군의 피를 본떠 왕이 화살로 채색한 꽃입니다. 그래서 수달은 왕의 영혼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동굴은 주님이 무기를 숨겨주신 곳입니다. 기봉은 왕이 적과 싸울 때 큰 깃발을 들고, 군양미의 모습을 보기 위해 조각들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주왕산 입구에 있는 대전 사는 고려 태조 2년에 백련 공주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연화동 굴은 백련 공주가 묻히고 왕이 군대를 훈련시킨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 동굴 앞에 왕의 평안을 빌기 위해 주왕암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3. 주왕산의 먹거리
주왕산의 유명한 먹거리는 뜨거운 물로 요리한 백숙입니다. 철분 함량이 다른 약보다 높아서 맛이 다릅니다. 근처에는 주산지라는 연못과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영화를 볼 때 실망할 수 있도록 사진이 사라졌습니다. 특히 왕버드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물도 줄어들어 예전처럼 사진과 영상만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주왕산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형성한 내촌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전에는 빵과 떡, 도토리, 라면, 동동주 등 간식거리를 팔았습니다. 게다가 게스트하우스여서 등산객들이 잠을 자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수가 국립공원의 수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로 마을 주민 모두가 도왔습니다. 옛 고등학교 건물은 2007년까지 변함이 없었지만 그마저도 파괴되고 로젠펠트 건물만 남아있습니다.
- 주왕산 입구 아래에는 대전사 공원길과 평범한 식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계의 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출산 개요와 등산코스 (0) | 2022.01.20 |
---|---|
용문산의 개요와 등산경로 (0) | 2022.01.19 |
덕유산 국립공원의 코스종류 (0) | 2022.01.16 |
무등산 개요와 접근경로 (0) | 2022.01.15 |
계룡산의 역사 (0) | 2021.12.26 |
댓글